조선일보는 창간 104주년을 기념한다며 올해 3월 5일 부터 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와 같이 기획기사를 열 번에 걸쳐 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고 노동시장 양극화를 막겠다는 구실이었다. 애매한 창간 104주년이 이런 거창한 의제설정의 계기라니,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노동자신문이라도 된 듯하다. 조선일보는 아예 첫머리부터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12 대 88의 사회를 넘자]”라고 제목을 달아 지금도 누리집에서 이대로 선전하고 있다.
이 사건은 조선일보가 지난 1세기 동안 줄곧 반노동자의 관점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노동계를 넘어 사회일반에 관심을 불러왔다.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의 협업’. 척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한쪽에서는 이 형용모순을 새로운 시도라고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민주노총·노동자역사 한내 등 여러 단체의 반대성명과 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와 공동기획을 주모한 한석호는 전태일재단에서 징계를 받아 사무총장에서 물러났다. 2008년 이래로 조선일보의 일관된 반민중적 논조와 싸워온 우리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이번 소동을 보면서 언론운동의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짚고 나아갈 바를 제시하려한다.
먼저 조선일보가 강조한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이라는 제목이 사실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 개인과의 공동기획’을 조선일보는 전태일재단과의 공동기획으로 둔갑시켰다. 여기에서 조선일보가 기획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바, 조선일보는 변절했거나 또는 착각에 빠진 전 노동운동가 또는 노조관료의 이름이 아니라 , 그가 몸담고 있던 전태일재단의 이름이 필요했다. 조선일보는 주관주의에 사로잡힌 전 노동운동가를 매개로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결합하고자 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매개로 전체 노동대중에게 파고들어 그 내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치려고 하였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취재해놓고, 비정규악법을 없애기는 커녕 비정규악법을 더 강화하자고 맹랑하게 주장하는 기획기사의 내용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자칭 ‘전태일재단과의 협업’ 소동은 3월 25일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의 징계사퇴로 한 매듭이 지어졌지만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우선 조선일보가 위 기사제목을 ‘조선일보와 한석호’의 공동기획으로 고치지 않고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이라고 그대로 우기고 있다. 다음으로 한석호 전 사무총장도 언론재벌과 결탁한 자신의 비뚤어진 노동관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징벌을 선의 또는 공익을 위한 피해라고 여전히 반노동자적 입장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일보도 기사와 논조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석호는 전태일재단 이덕우 이사장과 이런 내용을 공유하였으며, 사무총작 직에서 파면을 시키지 않고 정직·감봉 등 낮은 징계로 모면해주기로 미리 약조까지 했다고 한다.
한석호는 “노선에 대한 비판과 징계는 감수할 수 있으나 이번 상황은 인간적인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석호는 자기노선에 대한 소신과 인간적 정당성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어 “조선일보의 반노동 행태야 이미 익숙한 일이라 치더라도 문제는 전태일 재단이 전태일의 이름을 욕보인 것이고, 동시에 그대로 우리 모두의 이름을 욕보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한석호는 이 비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애초 자신들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훔쳐서 얻고자했던 보편적 공익성의 외피를 그대로 덮어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누리집에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12 대 88의 사회를 넘자]”라는 제호를 당당하게 내걸고 선전하고 있다. 한석호는 한석호대로 “각계각층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단 분신은 빼고, 실천과 나눔과 상생 등등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마음에 드는 손가락을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며 “과거의 나에게 무릎 굽히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을 수만 있다면, 무릎 꿇겠”다는 요설을 늘어놓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재번과 재벌언론의 반민족, 반민주, 반민중적 논조가 불러일으키는 폐단은 이제 민주시민 대부분일 알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데 앞장서온 우리 언론소비자주권행동으로서는 이같은 소동을 그냥두면 사건이 되고 사건이 적폐가 되어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 실현을 가로막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석호 등 주장의 본질은 ‘각계각층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즉, 재벌독재의 방식으로 1:99 체제인 한국사회의 모순을 심화시키는데 재벌독재를 지키는데 복무하는 것임은 보름달처럼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 언론소비자권행동은 당사자인 전태일재단이 나서서 이번 소동의 본질인 재벌독재의 작동방식과 선택에 대해서 엄격한 비판과 해명, 자기반성이 있어야 된다고 감히 쓴 소리를 드리며,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하나, 조선일보는 잘못된 제목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을 “한석호-조선일보 공동기획”으로 고쳐라!
– 둘, 전태일재단은 이번 소동의 과정을 소상히 공개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
– 셋, 노동운동, 민중운동단체와 시민사회는 이 사태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을 직시하고 재벌독재 논리가 판치지 않도록 논의를 조직하자!
2024.4.10.
언론소비자주권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