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대 초. 일제는 조선과 일본민중들이 불리한 전황을 알지 못하도록 언론을 통제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 이른바 일왕 히로히토의 옥음방송이 경성중앙방송을 통해서 송출되기 직전까지도 절대 다수의 조선민중들은 일본이 이기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42년 무렵부터 여운형을 비롯한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일본이 지고 있는 전황이 소리소문없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물리적으로 단파라디오 수신을 할 수 있는 경성방송국을 진원지로 지목하고 수사를 해서, 무려 3백여 명을 잡아 들였다. 이중 여섯 분은 끝내 감옥에서 숨지고 말았다. 이 일이 없었다면 우리 방송의 역사는 한낱 일제통치의 수단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경성방송국은 해방 뒤 KBS가 되었다.
이로부터 이 나라의 역대 친일독재권력은 틈만 나면 언제나 공영방송과 신문에 재갈을 물리려 해왔다. 반대로 민족적·민주적 양식을 가지 언론인은 공영방송과 신문이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다.
이 나라는 불행히도 외세의 개입 때문에 항일전쟁기간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처벌과 청산에 실패했다. 이는 독재 대 민주라는 구도로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언론에서 특히 그러하다.
지난 3월31일 MBC는 ‘스트레이트’ 보도를 통해, KBS 안팎 인사들이 공모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위기는 곧 기회다> 라는 제목의 대외비 문건을 공개했다. 그 요지는 박민 KBS 사장의 입장에서 △사장 제청 즉시 챙겨야 할 현안 △사장 취임 즉시 추진해야 할 사안 등 크게 두 가지로, ‘임원, 자회사 사장, 감사, 국장급 직위는 가능한 우파 등용’ ‘이번 단체교섭은 주요 실·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비롯한 독소조항들을 과감하게 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하였다. 나아가 ‘KBS 정상화’ ‘방송구조 개편(KBS 공중분해)’ 등 공영방송 KBS를 자칭 우파들이 맘대로 좌우하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극단적 계획까지 세웠다. 이 문건 내용 중 일부는 박민 사장 취임 뒤 실행되었고 일부 직원들이 업무에 참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KBS 사장 측은 “출처를 알 수 없고 KBS 경영진이나 간부들에게 보고되거나 공유된 사실이 전혀 없는 문건”이라며 “근거 없는 보도 유감, 정정보도 신청, 다른 언론사에 보도자제” 등을 요청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 현 KBS 경영진 뿐만 아니라 KBS 전체가 괴문서의 피해자이다. 직원은 “고위급 간부 일부가 업무 참고용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건”이라고 말했다.
4월 초 전국언론노조 등 여러 언론관계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이 ‘괴문서’가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이 만든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바탕으로 더 나쁘게 만들어 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사안은 총선 뒤로 밀렸다. 총선에 나타난 민의는 윤석열정부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이룬 민주주의 성과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이 표출한 민의와 헌법이 규정하는 언론자유에 대한 민중의 권리에 따라,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잘잘못을 제대로 따져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수사를 통한 법치를 그토록 강조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정부의 대통령과 법무장관에게 있다.
4월 15일 민주당 언론특위위원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사건을 비롯한 언론계 관련 의혹에 대하여, 윤석열대통령에게 언론탄압을 중단하고 진실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하였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이 입장의 시기적절하고 정당하다고 평가하며, 현 대통령과 법무장관은 총선민의를 받들어 이 사건에 대해서 엄정수사할 의무가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누명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 KBS 경영진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지 말고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언론자유 구현에 앞장서온 우리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하게 지켜보고 실천할 것임을 밝힌다.
2024년 4월 16일
언론소비자주권행동.